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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이응노와 뉴미디어 – 르네 쉴트라 & 마리아 바르텔레미 (Lee Ungno and New Media - René Sultra & Maria Barthélémy)

  • 기간 :2016년 04월 15일 ~ 2016년 06월 26일
  • 장소 : 이응노 미술관
  • 종료
슬라이드 1

프랑스 2인조 아티스트 르네 쉴트라(René Sultra), 마리아 바르텔레미(Maria Barthélémy)의 뉴미디어 프로젝트 는 특수 직물 스크린을 활용한 설치작품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시각, 기억, 기호, 이미지에 관해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네 가지 키워드는 모두 커뮤니케이션 작용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이 전시는 뉴미디어 매체를 통해 구현된 이 4가지 개념들과 이응노 추상화 사이의 이론적, 양식적 대화를 시도하는 전시다. 기호로서 이응노의 문자추상이 어떻게 ‘상호소통성’을 통해 현대회화의 구성원리를 실현해냈는지, 뉴미디어 환경 속에서 인간의 인지작용과 기호-이미지가 갖는 속성은 어떤 것인지 등 등 쉴트라 & 바르텔레미가 프로젝트를 통해 던진 질문 속에서 이응노의 추상작업을 재해석해 본다.

 

1. 첫 번째 섹션 : 무한의 기호

 

우연의 반복은 운명이 된다. 첫 번째 섹션은 우연적, 반복적 패턴이 전체 구조를 결정하는 방식과 관계를 탐구한다. 이것은 쉴트라 & 바르텔레미의 작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세포자동자’ 이론을 설명하는 동시에, 이응노를 포함한 1960-70년대 모던 페인팅 담론과도 관련이 있다. 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직조된 거대한 직물로 사이언, 마젠타, 황색, 흑색, 백색의 기본색을 조합해 직물을 짜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프로그래밍은 세포자동자(Cellular Automata)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세포자동자 이론이란 최소 형태의 기본 모듈이 단순한 규칙을 통해 증식 발전하고, 주변 상황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패턴 전개 방식이 등장하며, 이 전개 형태가 물리 현상계와 닮아있다는 이론이다. 작가는 세포자동자 이론을 바탕으로 몇가지 규칙을 적용해 직물 위에 ‘무한 패턴’을 생성해냈다. 색채는 확률적 방식으로 조합되며 주변 상황과의 교감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찰나적 전개방식을 선보인다. 이것은 기억 소자들이 서로 결합 소멸하며 인간의 기억 작용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 시각적으로 드러낸 은유적 텍스타일이기도 하다.

 

좌우의 픽셀과 상호반응하며 반응점을 향한 연결성을 찾으며 제작된 는 마치 거대한 추상화와 같이 관람객의 시각적, 인지적 감각에 반응을 일으키며 체험적 경험을 이끌어낸다. 의 표면은 5개의 색이 이루는 거대한 직물로 색채를 통해 공간을 변화시키며, 관람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기본적으로 이 디지털 추상은 점, 선, 면을 기본요소로 활용해 표현적 추상화를 만들어낸 칸딘스키나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의 반복을 통해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낸 몬드리안의 실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1950-60년대 추상표현주의, 모노크롬 페인팅은 개별 기호의 군집, 반복, 즉흥성 등을 통해 상호 조형성 및 무한의 시각 감흥을 이끌어냈다. 로버트 스미드슨은 그의 에세이(1966)에서 1960년대 뉴욕 화파의 실험을 시각적 ‘무한’의 경험이라 해석했으며 아네스 마틴 등 반복을 통해 무한적 시각경험을 창조해내는 회화적 실험이 현대회화 영역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서양의 추상화 작법은 종종 1960-70년대 동양의 서법과 비교되었으며 앵포르멜을 비롯한 프랑스 전후 추상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응노는 이 미술사적 배경에 속한다. 이응노의 패턴 반복, 붓질의 즉흥성과 충동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은 시각적 즐거움 더불어 관람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그림이 공간과 반응하여 만들며, 무한한 시각장 속으로 포섭되는 체험적 효과를 제공한다. 이것이 디지털 타피스트리와 이응노의 추상화과 공명하는 지점이다. 이응노의 실험적 회화는 개체의 반복과 군집, 충동적 붓질, 조형적 어울림 등을 통해 서체에 기반한 조형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 <군상>과 같이 특정 모티브의 무한 반복과 1977년 <구성>작품 등 우연적 붓질에 기댄 회화 및 드로잉 소품들은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는 서법의 시간성을 드러낸다. 군상은 작게 보면 하나의 붓질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전체를 이룰 때 상호 반응을 통해 거대한 추상화를 이루게 된다. 이것은 마치 획과 획이 모여 형상과 기호를 이루는 이응노 추상의 근본이기도 하다.

 

상호반응성의 측면에서 작품 은 의미심장하다. 조끼 표면에 깜빡이는 셀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과 서로 반응하며 작동하다록 제작됐다. 이것 역시 세포자동자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광섬유 반응끼리 서로 반응하며 드러나는 셀의 패턴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반응할수록 다변화하고 예측할 수 없는 패턴을 드러낸다. 동시에 광섬유 셀은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의 이미지 (혹은 텍스트), 그림 (혹은 기호)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방식과 상호 연결성을 반영한다. 셀은 그림도 아니고 기호도 아닌 중립적 형태의 소통매체인 것이다. 디지털 셀로 제작된 조끼가 수학 작용과 이진법 체계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끌어 모으듯이, 이응노의 <군상> 역시 각 개체의 특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을 조화 속으로 끌어들이며 연결시키고, 무한한 시각적 환영 공간을 창조한다. <군상> 이외에도 획과 획이 이루며 여백 속에 서도(書道)의 조화로움을 이끌어내는 이응노의 작품들은 모두 이런 문맥에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두 번째 섹션 : 기억, 이미지, 텍스트

 

두 번째 섹션은 기억과 이미지의 문제를 다룬다.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 <물질과 기억>에서 기억은 이미지를 통해 떠오른다고 서술했다. 르네 & 마리아는 그 기억의 불확실성, 이미지라는 의민전달 매개체(기호)의 불완전성을 다룬다. 작가는 프랑스 영화감독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를 텍스틸로스코프(textiloscope)라는 스크린용 직물 위에 투영하며 새로운 유형의 ‘포토그램’ 영상을 창조했다.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기억의 불확실성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현실 인식의 차이를 다룬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는 텍스틸로스코프 위에 픽셀의 크기를 달리하며 상영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바로크 정원은 웅장한 프랑스 저택의 미로와 같은 내부와 공명하며, 이 미로와 같은 구조는 등장인물 사이에 놓인 모호한 진실과도 공명한다. 영화는 어떤 것이 옳은 기억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 모호성은 픽셀의 선명도를 달리하며 움직이는 영화 이미지로 표현된다. 영상은 종결부에 이르러 LADAM(L’Anne dernier a Marienbad)이라는 포토그램(photogram) 형상으로 변화하며 끝을 맺는다. 영화 이미지가 문자로 그리고 이어서 표의문자로 변형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은 기억의 상대성은 물론 문자-이미지가 이루는 기호작용, 표의문자의 기원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포토그램’ 형식으로 저장된다. 작가는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처럼 텍스틸로스코프 영상을 가로로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마치 책을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읽게’ 된다. 문자와 이미지의 경계를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응노의 문자추상 회화는 문자의 획을 기본요소로 삼아 회화적 추상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시각 형태 자체에 의미가 깃든 표의문자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그림이 글씨가 되고, 글씨가 그림’이 되는 기호적 상태를 지향한다. 르네 & 마리아의 “픽토그램”은 표의문자인 한자의 기원과도 연결될 수 있다. 한자는 이미지를 통해 문자적 의미를 전달하는 글자다. 여기서 문자와 그림은 완전히 혼융되어 있으며 형식 자체가 내용을 의미하며, 내용 자체가 형식을 결정한다. 표의문자에서는 이미지와 기호의 경계선이 무너져 내린다. 이응노의 한자의 이런 특성을 회화적으로 조합해 문자추상이라는 독특한 미적 영역을 개척했다. 그가 제작한 수많은 타피스트리와 상형문자를 바탕으로 한 꼴라주 작품, 기호적 의미를 지닌 도장의 문양, 상형문자를 도해한 수많은 드로잉 습작들은 ‘회화적 문자’를 향한 이응노의 쉼없는 실험을 드러낸다. 이런 문맥에서 이응노의 문자추상은 르네 & 마리아의 픽토그램과 공명한다. 그렇다면 이미지-문자의 상태에서 르네 & 마리아의 질문은 무엇일까? 기억은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며, 그 이미지가 의미전달 매체가 된다. 따라서 표의문자, 즉 칼리그램은 기억의 의미적, 형상적 속성을 완벽하게 나타내는 매개체다. 르네와 마리아는 바로 기억의 불확실성을 다룬 영화를 통해, 기억의 완전체를 지향하는 ‘픽토그램’의 소통체계를 건져 올린 것이다.